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12

사도행전,
거침없이
끝나는 책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아무도 막지 못한 복음의 여행 이야기

사도행전 1–28장
여는 글

사도행전은 성경에서 제일 박진감 넘치는 책이에요. 불의 혀 같은 것이 내려오고,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고, 극장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들어 소리를 지르고, 배가 풍랑에 부서지고, 손에 독사가 매달려요. 😄 영화로 만들면 액션 장르에 들어갈 책이에요.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숨어 있어요. 바벨탑을 뒤집는 오순절, 이사야서 세 장 뒤에 숨은 약속, 성경과 유대 역사가의 기록이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 헬라 시인의 시 한 구절, 그리고 책 전체를 꿰뚫는 "막다"라는 단어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하늘에 오르셨지만 성령으로 여전히 일하시는 예수님이요.

1부

사도행전은 어떤 책일까?

누가가 쓴 두 권짜리 이야기의 두 번째 권

사도행전은 이렇게 시작해요.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1:1). 여기서 "먼저 쓴 글"이 바로 누가복음이에요. 누가복음이 예수님이 "시작하신" 일을 적었다면, 사도행전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계속하시는 일을 적은 책이에요. 예수님의 승천부터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복음을 전하기까지, 대략 30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슬쩍 나오는 "우리"16장 10절에서 갑자기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라며 주어가 "그들"에서 "우리"로 바뀌어요. 이런 "우리 구절"은 16장, 20–21장, 27–28장에 나와요. 누가가 그때부터 바울 곁에 함께 있었다는 흔적이에요.
1장 8절이 곧 목차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하셨어요. 책도 그대로 흘러가요. 예루살렘(1–7장), 유대와 사마리아(8–12장), 땅끝을 향해(13–28장).

※ 그리스 델포이에서 발견된 비문 덕분에 고린도에서 바울을 재판한 갈리오 총독(18:12)의 재임 시기를 대략 주후 51–52년으로 볼 수 있어서, 바울의 여행 연대를 맞추는 중요한 기준이 돼요. 사도행전의 기록 연대는 60년대 초부터 80년대까지 여러 견해가 있어요.

사도행전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사실은 "성령행전"
예루살렘의 오순절(2장) 뒤에도 사마리아(8:17), 이방인 고넬료의 집(10:44), 에베소(19:6)에서 성령이 임하세요. 복음이 새 경계를 넘을 때마다 성령이 먼저 가 계셨어요.
2
설교가 가득한 책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장), 가장 긴 스데반의 설교(7장), 바울의 회당 설교(13장)와 아덴 설교(17장). 책의 상당 부분이 설교예요.
3
물가마다 침례
길가의 에디오피아 내시(8:38), 고넬료의 집(10:48), 강가의 루디아(16:15), 한밤중의 빌립보 간수(16:33). 믿은 사람들은 곧바로 침례를 받았어요.
4
세 번 들려주는 회심
다메섹 길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9장, 22장, 26장에 세 번 나와요. 누가가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 사건이에요.
5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11:26). 오늘 우리가 쓰는 이름이 처음 생긴 곳이에요.

사도행전의 핵심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시기 직전에 하신 약속에 담겨 있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주인공은 베드로도 바울도 아니에요. 증인들을 보내시고 붙드시고 이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영이에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오순절의 다락방부터 멜리데 섬의 모닥불까지, 누가가 숨겨 둔 이야기들

1

바벨탑을 뒤집은
오순절 아침

사도행전 2:1-41 · 창세기 11:1-9 · 출애굽기 32:28
바벨 (창 11장)
하늘까지 올라가려던 사람들의 말을 하나님이 혼잡하게 하시고, 온 땅으로 흩으셨어요.
VS
오순절 (행 2장)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령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듣고 모였어요.

바벨에서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내고"(창 11:4) 하늘에 닿으려고 탑을 쌓았어요.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온 땅에 흩으셨죠. 그런데 오순절 아침, 반대 방향의 일이 일어나요. 사람이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라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2:5) 제자들의 말을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들었어요(2:8).

재밌는 건, 하나님이 언어를 하나로 되돌리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한 언어를 쓰게 하신 게 아니라, 각자의 언어로 똑같은 복음을 듣게 하셨어요. 다른 말을 쓰는 채로 한 백성이 되게 하신 거예요.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고, 베드로는 "때가 제삼 시니"(2:15), 아침 아홉 시밖에 안 됐다고 해명해야 했어요. 😄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침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었어요(2:41). 이 숫자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시내산 아래에서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한지라"(출 32:28). 율법이 돌판에 새겨지던 때에는 삼천 명이 죽었는데, 성령이 마음에 임하시던 날에는 삼천 명이 살아났어요. 바울의 말처럼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고후 3:6)이에요.

※ 오순절(칠칠절)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하는 전통은 후대 유대 문헌에 분명하게 나타나요. 오순절의 삼천 명을 출애굽기 32장과 연결하는 것은 여러 설교자와 주석가들의 해석이에요.

돌아보기
내 이름을 높이려던 탑을 내려놓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 백성으로 모으시는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2

앉아 계시던 예수님이
일어서신 순간

사도행전 7:54–8:1 · 누가복음 23:34, 46
십자가의 예수님 (눅 23장)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VS
돌에 맞는 스데반 (행 7장)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성경은 여러 번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해요. 베드로도 오순절 설교에서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는 시편 110편을 인용했어요(2:34). 일을 다 마치신 왕의 자리예요. 그런데 스데반이 돌에 맞기 직전 하늘을 보았을 때는 달랐어요.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노라"(7:56).

왜 서 계셨을까요? 성경은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이렇게 읽어 왔어요. 땅의 법정에서 억울한 판결을 받는 증인을 위해 하늘의 변호인이 일어나셨다고, 혹은 먼저 오는 순교자를 맞으러 일어나셨다고요. 이름 "스데반"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 곧 "면류관"이라는 뜻이에요.

스데반의 마지막 두 기도는 십자가 위 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닮았어요. 자기 영혼을 맡기고,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구해요. 그리고 누가는 슬쩍 한 사람을 무대에 세워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7:58).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8:1).

그 사울이 훗날 바울이 되었어요. 그는 평생 그 장면을 잊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러 해가 지나 예루살렘 군중 앞에서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22:20)라고 고백하거든요. 스데반이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했을 때, 그 "그들" 속에 사울도 있었어요.

※ 예수님이 "서 계신" 이유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아서 여러 해석이 있어요. "스데반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바울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전해져요.

돌아보기
억울하고 외로운 자리에서도 하늘에서 일어나 나를 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3

이사야서를 조금만 더 읽으면
만나는 약속

사도행전 8:26-39 · 신명기 23:1 · 이사야 53:7-8 · 56:3-5
신명기 23:1
몸이 상한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VS
이사야 56:4-5
"고자들"에게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광야 길을 달리는 마차에 한 사람이 타고 있었어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였어요(8:27). 오늘로 치면 한 나라의 재무장관쯤 되는 사람이에요. 그는 예배하러 먼 길을 와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그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신 23:1). 수천 리를 왔지만 문 밖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던 거예요.

그 마차 안에서 그는 이사야 53장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어요.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8:32). 빌립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어요(8:35). 그런데 숨은 이야기는 여기부터예요. 이사야서를 세 장만 더 넘기면 56장이 나와요. 거기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세요.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그리고 그들에게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이름,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이름을 주시겠다고요(사 56:3-5).

자기 이름을 이을 자녀를 가질 수 없고, 성전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사람에게 이보다 더 기쁜 말씀이 있을까요? 길가에 물이 보이자 그가 물었어요.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8:36). 막을 것이 없었어요. 그는 침례를 받고 "기쁘게 길을 가니라"(8:39).

※ 여기서 "에디오피아"는 오늘날의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이집트 남쪽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 왕국(지금의 수단 지역)을 가리켜요. "간다게"는 그 나라 여왕을 부르는 칭호였어요. 이 내시가 고국에 돌아가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이레네우스가 전하는 전승이에요.

돌아보기
"나는 마른 나무"라고 여기던 자리에도 영원한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쁘게 내 길을 갑니다.
4

기도하던 사람들이
믿지 못한 기도 응답

사도행전 12:1-24

헤롯 왕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까지 감옥에 가두었어요.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어요(12:5). 그날 밤 천사가 베드로를 깨워 쇠사슬을 풀고 감옥 밖으로 이끌었어요. 베드로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어요. 거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12:12).

여기서부터가 성경에서 손꼽히게 웃긴 장면이에요. 😄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나왔어요. 베드로 목소리인 걸 알고는 너무 기뻐서 문도 안 열고 안으로 달려 들어가 외쳤어요.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어요!" 기도하던 사람들의 대답은 이랬어요. "네가 미쳤다." 아이가 끝까지 참말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의 천사라"(12:15). 그동안 베드로는 밖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요(12:16).

"로데"는 헬라어로 "장미"라는 뜻이에요. 기도하던 어른들은 응답이 문 앞에 와 있는데도 믿지 못했고, 장미라는 이름의 어린 여종이 제일 먼저 믿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도 돼요. 반쯤 믿으며 드린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이 장은 헤롯의 최후로 끝나요. 가이사랴에서 왕복을 입고 연설하자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외쳤고, 헤롯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자 주의 사자가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어요(12:21-23).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 사건을 기록했어요.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가이사랴에서 햇빛에 번쩍이는 은으로 짠 옷을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 불렀고, 그가 이를 물리치지 않은 뒤 심한 복통에 시달리다 닷새 만에 죽었다고요(주후 44년 무렵). 그리고 누가는 한 줄을 덧붙여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12:24). 교회를 칼로 누르던 왕은 사라지고, 말씀은 자랐어요.

돌아보기
믿음이 부족한 기도에도 문 앞까지 응답을 보내 주시는 하나님께,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5

"알지 못하는 신"과
헬라 시인의 시 한 줄

사도행전 17:16-34

철학의 도시 아덴(아테네)에 간 바울은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했어요(17:16). 광장에서 사람들과 토론하자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를 이렇게 불렀어요.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17:18). 원래 뜻은 "씨앗 쪼아 먹는 새"예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걸 떠드는 사람이라는 놀림이었어요. 😄

그런데 바울은 화내지 않고 그들이 가진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17:23). 옛 헬라 여행가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도 아테네에 "알지 못하는 신들"을 위한 제단이 있었다는 말이 나와요. 혹시라도 빠뜨린 신이 있을까 봐 이름 없는 제단까지 세워 둔 도시였던 거예요.

그리고 바울은 성경 대신 그들의 시인을 인용해요.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17:28). 이 구절은 주전 3세기 시인 아라투스의 시에 나오는 말이에요. 재밌게도 아라투스는 바울의 고향 다소가 있는 길리기아 출신이에요. 바울은 어릴 적 고향에서 들었을지도 모르는 시 한 줄로, 그들이 막연히 더듬어 찾던 분이 바로 천지를 지으시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라고 전했어요(17:24, 31).

반응은 반반이었어요. 부활 이야기에 어떤 사람은 조롱했고,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고 했어요(17:32). 그런데 몇 사람이 믿었는데, 누가는 그 이름을 적어 두었어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예요(17:34). 수많은 철학자 속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남았어요.

※ 17:28 앞부분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는 크레타의 시인 에피메니데스에게서 온 말로 보는 학자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바울이 본 제단이 어떤 제단이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어요.

돌아보기
이웃이 막연히 더듬어 찾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이심을,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전합니다.
6

왜 모였는지도 모르고
두 시간을 외친 사람들

사도행전 19:17-41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던 거대한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어요. 신전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도 많았죠.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퍼지자 마술을 하던 사람들이 자기 책을 가져와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어요. 그 책값이 "은 오만"이었어요(19:19). 은 한 드라크마를 하루 품삯으로 치면, 일꾼 한 사람이 백 년 넘게 일해야 모을 돈이에요.

그러자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동료 장인들을 모았어요. 그의 연설을 들어 보면 속마음이 보여요. 먼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19:25), 그다음에야 여신의 위엄을 걱정해요. 😄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19:26)고 하니 장사가 안 되게 생긴 거예요.

흥분한 무리는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치며 연극장으로 몰려갔어요(19:28-29). 발굴된 에베소의 대극장은 2만 명이 넘게 들어가는 큰 극장이에요. 그런데 누가는 이렇게 적어요.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19:32). 이유도 모르고 모인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두 시간이나 외쳤어요(19:34). 결국 시의 서기장이 나와서 "이러다가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다"고 달래서야 흩어졌어요(19:40).

두 시간 동안 "크다 아데미여"를 외친 목소리는 극장을 가득 채웠어요. 그런데 누가는 그 소동 바로 앞에 한 문장을 적어 두었어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 오늘날 그 거대한 신전 터에는 다시 세운 기둥 하나만 서 있어요. 큰 것은 아데미가 아니었어요.

돌아보기
세상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크다"에 휩쓸리지 않고, 참으로 크신 주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7

살인자에서 신으로,
하루아침에 바뀐 평판

사도행전 14:8-19 · 27:13–28:10
루스드라 (14장)
처음엔 "신들이 내려오셨다"며 제물을 바치려다가, 나중엔 돌로 쳤어요.
VS
멜리데 (28장)
처음엔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하다가, 나중엔 "신이라" 했어요.

로마로 호송되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열나흘을 떠밀려 다녔어요(27:14, 27).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어요(27:37). 모두가 먹지 못하고 절망했을 때, 죄수 바울이 일어나 떡을 가져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했어요(27:35). 모두가 힘을 얻었고, 배는 부서졌지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멜리데 섬에 닿았어요.

이 항해 기록은 아주 자세해요. 1848년 스코틀랜드의 요트 항해가 제임스 스미스는 직접 그 바다를 조사한 뒤, 바람 방향과 떠밀려 간 거리, 수심을 재는 장면까지 실제 바다 사정과 잘 들어맞는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어요. 배를 타 본 사람이 옆에서 적은 기록이라는 거예요. 이 장면이 "우리 구절"이거든요.

비에 젖어 추운 해변에서 섬 사람들이 불을 피워 줬어요. 바울이 나뭇가지를 모아 불에 넣는데,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었어요(28:3). 사람들은 수군거렸어요.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28:4). 그런데 바울이 독사를 불에 떨어 버리고 멀쩡하자, 한참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말을 바꿨어요. "그를 신이라"(28:6). 😄

몇 해 전 루스드라에서는 거꾸로였어요.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 부르며 제사하려다가(14:12), 며칠 뒤엔 바울을 돌로 쳐서 성 밖에 버렸어요(14:19). 사람들의 평판은 하루에도 살인자와 신 사이를 오갔어요. 바울은 어느 쪽에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가 붙든 것은 풍랑 속에서 들은 한 마디였어요.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27:24). 복음을 로마까지 가져가시겠다는 약속이었어요.

※ 28:4의 "공의"를 정의의 여신 디케로 읽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에요. 바울이 난파한 정확한 해안 위치는 몰타 섬 안에서도 여러 후보지가 있어요.

돌아보기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풍랑 속에서도 나를 끝까지 데려가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듭니다.
맺는 글
"누가 막겠느냐"로 이어지다
"거침없이"로 끝나는 책

사도행전에는 "막다"라는 단어가 중요한 순간마다 나와요. 내시는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8:36) 물었고,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10:47), 또 "내가 누구이기에 능히 하나님을 막겠느냐"(11:17)라고 했어요. 복음이 새 경계를 넘을 때마다,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 거예요.

그리고 사도행전의 헬라어 원문은 마지막 단어가 "거침없이"예요.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채 셋집에 갇혀 있었지만,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어요(28:31). 바울이 재판을 어떻게 받았는지 누가는 말하지 않고 책을 끝내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하시는 일은, 오늘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더라" (28:31)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